오늘 아침 세 자매를 유치원에 등원시켜주는 길에 거울 치료와 같은 것을 경험했다.
동네 골목길에서 벗어나 유치원에 접한 도로로 이어지는 길로 진입하기 위해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운전대를 돌리려는 찰나.
전기 오토바이가 보행자 횡단보도를 건너며 튀어나오는 바람에 내 차와 추돌할 뻔했다.
급정거하느라 뒤에 타고 있던 쌍둥이는 앞 좌석에 부딪혔고, 맨 뒤에 엉거주춤 서서 카프리썬을 빨대로 쪽쪽 빨아마시던 막내는 옷에 주스를 쏟아 젖었다고 아빠를 원망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더 기가막힌 건 사고를 일이킬 뻔한 장본인 오토바이 청년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안심하기는 커녕 그 자리에 서서 운전석에 있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창문을 다 내리고 물었다.
나 “뭐요?”
그 “뭐?”
나 “뭐.”
순식간에 둘 사이에 오고간 세 번의 ‘뭐’.
나는 황당해서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었고, 이미 늦을대로 늦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나는 회사까지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해서 마음이 바빴다. 그 친구는 자기 분에 못 이겨 “씨발 새끼”를 길 위에 그의 딸들과 함께 남기고 사라졌고, 나는 그가 지랄을 하든 말든 사이드 미러를 통해 나눠줄 관심 조차 아까워 차를 천천히 움직였다.
신기한게 나는 보통 이런 급작스런 갈등과 분쟁 상황에 휘말리게 되면 삼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고 몸도 부들부들 떨리고 목소리 톤도 바뀌는데 – 그게 겁을 먹어서든 공격성에서 비롯되었든 –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 않고 타격감 없이 차분한 것이다.
중년의 무심함이랄까. 시큰둥함이랄까.
아니 오히려 나에게 욕설을 하고 적개심을 드러낸 아마도 이십대로 추측되는 오토바이 라이더가 굉장히 하찮고 비루하게 느껴졌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어쩌면 지난 금요일 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이 남긴 유쾌한 영향력 때문일지도, 아마도 월요일 아침 안 그래도 진 빠지는 일들이 수두룩하게 예고된 아직 구경조차 못한 새로운 한 주, 정신적 에너지를 이 무가치한 일에 1도 낭비할 수 없다는 고효율적 집중력을 따르다 보니 예기치 못한 시나리오에 적절하게 발휘할 순발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평소 운전할 때 도로 위 나를 제외한 모든 익명의 운전자들에게 남발하고는 했던 ‘병x’, ‘거지 같은 자식’, ‘운전을 할 줄 아는거야, 졸고 있는건가’ 등 1차원적인 비유에서 아주 비열하게 창의적인 접근법까지 뭐든 앞으로 삼가고 묵언 수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게 만드는게 바로 말이로구나.
2026년 새해 결심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