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놀러간 LA의 시내 풍경을 우버의 창문을 통해 재구성할 때 미국스러운 쌩뚱맞음으로 기억에 각인된 TV 시리즈 옥외 광고판. 2005년 ‘브란젤리나‘라는 세기의 커플을 탄생시킨 화제의 영화를 흑인과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바꿔버린 이 낙락한 시리즈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워낙 다재다능한 Donald Glover의 연기와 음악성을 평소에 흠모하기도 했고. 북미에 공개된지 1년 반 만에 동생의 캐나다 아마존 프라임 계정을 빌려 시청했다.

정체 불명의 스파이 조직에 따로 따로 지원한 주인공들은 John과 Jane이라는 이름을 각각 부여받고 Smith 부부로 맺어져 뉴욕에 거주하며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Jane을 연기한 Maya Erskine은 내가 몇 달 전에 우연히 알게된 재즈 밴드 Steps Ahead의 드러머 Peter Erskine의 딸이고, 일본인 모친의 인종적 특성이 두드러져 피부와 머리색, 얼굴 표정과 분위기가 영락없는 아시아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이 창작물의 비전형적인 매력이 처음 드러나는데 기존의 첩보 영화 주인공으로 대게 키크고 늘씬한 미남 미녀 백인이 등장하는 걸 떠올려보면 이들의 프로파일은 여기서 삐딱하게 벗어나 있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일련의 음밀한 스파이 활동이 극중 서사를 이끌어 가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스릴 넘치고 짜릿한 연인/부부 관계의 라이프 사이클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경계와 매혹, 환희와 실망, 의심, 체념, 미련과 기대 그리고 회복과 같은 인간 관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심리적이고 때론 감정적인 영역을 영민하게 다룬다. 이게 바로 이 작품의 두번째 미덕이다.
마지막으로 이 스파이 시리즈가 지닌 독특하고 기이한 미감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총괄 제작자이자 몇몇 에피소드에서 감독을 맡은 Hiro Murai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일본계 미국인 영상 제작자인 그는 Donald Glover의 뮤지컬 퍼소나 Childish Gambino의 논쟁적인 뮤직 비디오 This is America 감독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내가 예전에 인상 깊게 본 Atlanta(이 시리즈 주인공도 Donald Glover이다!), 시즌4로 현재 진행형인 나의 최애 주방 활극 The Bear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에피소드 삽입곡 선정이 탁월하고, 배우 의상과 스타일에 대해 견지하는 세심하고 일관된 태도는 보는 이에게 즐거운 레퍼런스가 된다.
문학상을 받은 장편 소설이든 인간의 심오한 정신성이 깃든 교향곡이든 박찬욱 감독의 영화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좋은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한 것 같다. 감상자가 새삼 삶을 감사하게 되고 이전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Mr. & Mrs. Smith는 내게 이 기준을 만족시키는 작품인가? 적어도 3년에 걸쳐 오징어게임을 보았지만 사려 깊은 남편이 되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진 못한 걸 보면 ‘매우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