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캐쥬얼한 5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약속이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식사 자리를 갖기 전 한 사진작가의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 참석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내가 예전에 구독하던 뉴스레터에 실린 사진을 통해 그 작업들을 눈여겨 본 작가였고 내 친구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전시 오프닝에는 나와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다채롭게 힙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상기되고 약간은 기대하는 얼굴로 서로를 알아보며 반갑게 인사하고 네트워킹을 헸다. ‘서울의 젊은 전시 오프닝에는 주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는구나!’하고 감탄하는 나는 영화 Closer에서 사진가 줄리아 로버츠 사진전 오프닝에 참석한 의사 클라이브 오언의 심정이었다. 어색하게 나탈리 포트먼에게 치근대며 전시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현실의 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지만,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근대 건축 꼭대기 층 공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채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근처 큰 길가에 위치한 일본식 꼬치구이 집에 대기자 목록에 오르기 직전 마지막 손님으로 받아들여져 바 자리에서 닭고기 몇몇 부위와 아스파라거스 구이를 주문하고 술 몇 잔을 기분 좋게 걸쳤다. 그리고 전시 개막 뒤풀이 중인 사진작가와 그의 지인들 무리 모임에 어쩌다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술자리는 예기치 않게 점점 무르익어 갔고 우리는 장소를 또 한번 옮겨 3차까지 이어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익명으로 남고 싶던 내 바람을 거슬러 나는 친구의 입을 통해 미묘하게 곡해되어 소개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낯선 이들로 둘러싸여 새벽 2시가 넘도록 미지의 동네에서(서울의 광대함을 오늘 이렇게 또 배웠다) 깨어 있는 경험이 근 십여 년만이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고단했으나 한편으로는 옛날 생각이 나게 하는 아련한 정취도 있었다. 내일이 없는 듯, 어리석고, 낭만적이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오늘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예술가들과 애호가들. 그들의 유쾌함이 신기하고 즐겁고, 알면서도 헤어질 결심을 못해 노심초사하는 딸부자 회사원 아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