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gin’

어떤 음악은 듣고 있다 보면, 일단 클래식은 논외로 치자, 가령 5, 60년도 더 오래된 시절에서 들려온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한물간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운 구석 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와 정서, 태도를 내가 받아들이도록 청각적으로 종용하고는 끝나버린다. 나는 이게 그 음악 또는 노래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려는 거창한 보편성을 추구하기 보다 오히려 그것이 놓인 시대의 고유한 분위기와 정신을 고이 기리고 오롯이 대변하려고 애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창적인 선율과 화성의 완결성은 내적인 필수 요건인거고. 오늘의 나와 ‘딸깍!’하고 연결되는 음악은 사회 부조리와 세상의 불의에 가차없이 저항하는 고결한 정신의 반항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의 쾌락을 지독하게 탐닉하고 외설적인 퇴폐미로 가득 찬 중독자,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현실 인식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이 모두 이긴다는 희망에 위태롭게 매달린 로맨티스트의 모습을 취한다. 

이러한 얼굴로 다가오는 음악을 맞닥뜨리면 나는 이제 아무것도 무릅쓰지 않고 그저 안온하고 적당한 선택만 내리는, 원만한 상황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꺼리는 소심한 중년의 초상을 하릴없이 발견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외곬으로 치닫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여겨 늘 경계하며 현재의 지식과 취향, 관점과 감정, 심지어 관계 마저 이 심리적 준칙에 따라 발전시켜왔다. 딱히 중용의 지혜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두루두루 빠짐 없이 나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거의 본능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십여 년의 담담한 인생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겪은 내가 경탄해 마지 않고 깊이 매료되는 부류는 대부분 “씨X 굳이 저렇게 까지 해야해? 아니 뭐 이 딴 것도 알아야 돼?”라는 강한 의구심을 내게 심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회적 성취도와 경제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무언가에 빠져들어 어딘가에 미칠 수 있는 시간과 용기를 점점 잃어가는데 deus ex machina 같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개입과 비가역적인 계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옛날 음악들을 디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