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좌절감을 안겨준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하나는 다양한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최신 입장을 다룬 대중 과학서, 다른 하나는 60년대에 쓰인 밀란 쿤데라의 초현실적인 소설.
입자물리학, 양자역학, 천체물리학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쌓이고 연결될수록 이를 밝혀낸 인간 존재의 의미, 의식에 대한 경외감,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반비례해서 떨어지는 역설을 경험한다. 이 주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진척된다면 내 마음 속 혼란과 실존적인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은 ”그래서, 요점이 뭔데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만일 우주가 그냥 기계 장치라면, 초기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미분방정식 집합일 뿐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단지 무신경한 우주 안의 복잡성의 일시적인 깜박거림일 뿐이라면, 찰나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한 입자들의 집합체이며 엔트로피 증가로 인해 곧 씻겨나갈 존재라면, 굳이 왜 시간을 들여 우리 존재가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지를 알아내려 하고 있나?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재작년 밀란 쿤데라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 ‘농담‘ 등 그의 작품 제목만 알 뿐이지 정작 읽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져서 선택한 장편 소설 ’생은 다른 곳에’. 성차별주의적인 작가의 시선이 거북하면서도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 공교로운 상황 설정 능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서사의 전개가 산만하고 느슨해서 내가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는건지 끊임 없이 의심하게 되는 독서 체험이었다. 옮긴이 안정효는 쿤데라를 ‘문학의 살바도르 달리‘라고 표현했는데 가히 옳다고 본다. 작가의 편집증적인 문학 세계를 한국어로 빚어낸 번역가의 기염 덕분에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밀란 쿤데라의 다른 작품을 보게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난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