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jeong-ro

이번 겨울을 결산하는 한파, 큰눈, 칼바람이 한데 모인 2월의 첫 금요일 한낮, 충정로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작년 초에 구입한 빈티지 손목시계를 끄르다 바닥에 떨어뜨린 충격에 글래스가 빠져서 시계 수리공을 수소문하여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시계 상태를 확인하고 결국 오버홀을 의뢰했다. 유리 고정 작업은 비용이 안 들지만, 시계는 정비가 필요한 상태. 내부 톱니바퀴 오일도 다 말라버렸고, 기계로 정밀 측정하니 하루에 약 120초 씩 느려지고 있었다. 착용할 때 시계가 조금씩 느려지는 듯한 나의 느낌이 맞았다. 1950년대에 생산되긴 했지만 스위스 메이드 정품임을 확인한 건 덤으로 알게된 사실. 

아무튼 뭔가 보람 찬 일을 마쳤다는 기분을 안고 돌아가는 길에 경의중앙선 철로 위로 난 다리 옆 노포 순대국집에 자석에 이끌리듯 들어섰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의 끝물이었는데도 가게는 거의 꽉 차있었고, 혼밥 손님인 나는 맞붙인 4인 식탁 2개 중 빈 테이블 하나로 안내되어 먼저 온 세 명 바로 옆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와 이웃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나 내 왼쪽으로 장년 여성, 내 맞은 편 먼 자리에 초로의 남성, 그 옆에 내 또래의 여성으로 구성된 3인조는 가족처럼 보이진 않고, 직장 상사와 부하 또는 학교 교수와 제자 같이 일방적으로 편한 위계관계 속에서 주문한 순대국이 막 나와서 먹기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들 중 가장 어리고 또 경황이 없어 보이는 여성이 공유 수저통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어서 나는 사용할 식기를 꺼내기 위해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이것 좀 옮겨주시겠어요?”

메뉴 한 두 가지만 파는 작고 오래된 식당이 주로 그렇듯 기호 양념 재료와 김치 같은 밑반찬은 신선도와 맛을 관리하기 위해 모든 자리에 식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올려두기 보다는 손님이 들면 내어주는 방식을 취했고, 사용이 끝나면 치우고 다시 다른 곳에 내어주는 과정에서 부산함과 마찰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주방에서는 피크타임 점심 손님을 한바탕 맞이하고 잔뜩 쌓인 국밥뚝배기와 백반집 공기밥 그릇과 덮개, 스테인리스 물컵, 수저들을 설거지하고, 말리고, 정리하는 분주한 작업이 함께 틀어 둔 라디오 방송과 소란스럽게 어우러졌고 그 와중에 가게에는 혼밥 손님 3명과 2인 손님 한 팀이 더 들었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나갔다.

“사장님이 화이팅이 넘치시네.”

쉴새 없이 손님을 맞아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받고, 서빙하는 역할을 홀로 감당하며 홀의 질서를 지키는 여사장님을 내 옆의 장년 여성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그들의 대화에 올렸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내 순대국에 집어넣을 새우젓, 들깨가루, 청양고추, 대파의 양을 세심하게 다루는게 더 중요한 아주 점잖은 사람이기에 그 이후에 오간 그들의 말은 흘려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로의 남성이 주방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문제 삼기 시작했다.

“사장님 화나셨어요?”

눈치 빠른 장년 여성의 비아냥은 날선 힐난으로 바뀌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시끄러워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가 없잖소.”

초로 남성이 매섭게 쏘아붙였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테이블의 손님들은 계속 대화를 나누거나 스마트폰과 국밥에 열중하며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있다.

‘만원 짜리 국밥집에서 파인다이닝 바이브를 기대한 걸까.’ 진심 궁금해졌다.

“점심 장사가 거의 끝나서 저희도 정리를 해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어서요.”

홀의 지배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 손님을 더 안 받으면 되잖아요!”

초로 남성이 누구의 동의도 얻기 어려운 막무가내 윤석열식 발언을 이어갔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언쟁의 종료와 함께 홀의 활기는 어색한 정적으로 대체되었다.

“식사를 많이 남겼네, 너무 뜨거워서 입 천장이 데었니?”

장년 여성이 내 또래 여성에게 무안한 듯 말을 건넸다.

‘우리편이 단번에 식당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는데 너 같으면 순대가 제대로 목으로 넘어가겠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음식값 계산은 식사를 가장 적게 한 사람 카드로 하고 모순 투성이 빌런 일당은 식당을 떠났다.

곁에 앉은 나를 의식하신듯 빌런의 자리를 치우는 여사장님의 손길이 확연히 느려지고 소심해져서 나는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괜찮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다른 테이블 중년 남성 손님 두 명은 서로 자신이 사겠다 너스레를 떨며, 여사장님께 하나도 안 시끄러운데 왜 이상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위로를 남기고 떠났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젊은 여성 손님들은 공기밥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그런 소리할거면 조용한 집에서 혼자 밥먹지 왜 식당까지 와서 이러는지 알 수 없다고 거들었다. 내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여사장님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방에서 국밥을 끓이고 내주시는 홀의 지배자의 남편분으로 예상되는 사장님이 나타나 사람 좋게 웃으셨다.

“손님은 왕이야. ’시끄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넘어가지.”

“사람들 생각 다 같은거야. 시끄러우셨나 보지.”

“사람들 생각 다 달라요. 시끄러운 사람도 있고, 안 시끄러운 사람도 있는거지. 눈치 보고 살살 일하면 저녁 장사는 어떻게 준비해요.”

세월을 이기는 노포의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순대국 맛은 어땠냐고. 

일단 배추김치, 무김치, 돼지고기 모두 당연히 국산이고 아낌 없이 준다.

고춧가루 다짐양념이 따로라서 육수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국물이 첫맛은 슴슴한데 끝맛에 약간의 달큰함이 묻어 있다.

굳이 맛보러 먼 길 찾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근처에 볼 일이 있고 그게 마침 밥 때와 맞아떨어지면 먹어 보아야 할 집.
그래서 시계 수리 찾으러 가는 날 또 먹을 예정인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