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만 좋아하는 사회

투명사회

저자 한병철은 우리가 별 다른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질서와 기조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철학자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선언하는 그의 글은 철학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금언집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당신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요?’라고 따지고 들기 어렵게 만드는 어떤 권위와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그는 시대 현상들을 상술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문제의 근원에 놓인 부조리를 밝히는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데 『투명사회』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저자의 네 번째 국내 출간 저서이다. 2012년,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피로사회』에서 다루었던 주제,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 주체의 사회’의 연장선 상에 있는 『투명사회』는 이 시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철학자의 일관된 시선에 의해 드러난 세계의 이면을 핍진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저작과 인터뷰 기사,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참석하게 된 강연을 통해 내가 이해한 한병철의 시대 진단은 바로, 여태껏 자아에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타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존재한 ‘부정성’이 소멸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자아에게 부정성의 종말은 앞으로 밝고 유쾌한 일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방향도 끝도 없이 탈주하는 사회를 곁에서 만류하는 안전장치가 사라져 버린 끔찍한 사건, 이것이 저자가 설명하는 부정성의 종말이다.

부정성 개념은 한병철의 저술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꼽는다면 ‘타자,’ 즉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의지와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혐오스러운 것, 심지어 나를 공격하고 파괴하려고 위협하려는 적, 이 모든 것이 부정성의 범주에 속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부정성과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p.228, 역자 해제


저자가 『투명사회』에서 세분화하여 설명하는 현대 사회의 다채로운 양상들은 – 긍정사회, 전시사회, 명백사회, 포르노 사회, 가속사회, 친밀사회, 폭로사회 등 – 사실 우리에게 남아 있던 부정성이 해체되었다는 동일한 원인에 따른 증상으로서 관찰되는 것에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투명성’은 긍정적인 개념으로 널리 받아 들여지며, 사회 구성원들이 거부감 없이 지켜주기를 기대하는 규범처럼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자신에게 조차 투명하지 않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위해서 투명성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과, 경제적 가치,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대변되는 ‘긍정성’을 증식하기 위한 도구로서 투명성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로 우리는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투명사회는 매끈하고 획일적인 속전속결의 사회가 된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은 24시간 네트워크화되어 서로 맹렬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오직 정보 교환의 양과 속도로만 측정’된다.

이때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한 흐름을 교란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서 어떠한 부정적인 요소라도 배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은 조정된다. 얼마 전까지 페이스북이 ‘싫어요’ 버튼을 도입하는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짧은 글을 지향하는 저자의 얇은 책 『투명사회』는 독자에게 긴 호흡의 독서를 요청하는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철학자의 다소 음울한 시대 진단서를 끝까지 읽고 나면, 부조리하고 잔인한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독자는 절망스러운 감정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때로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속도, 친밀, 고백, 접속에의 강요에 맞서 느림, 거리, 비밀, 고립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불투명한 정신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니체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인간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바로 부정적인 것에 머무름으로써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