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대체로 수다와는 거리가 있고, 상대 또한 이야기를 실제로 나눌 기회가 드문 사람임에도 어쩌다 말머리가 열리면 바로 깊은 주제에 –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 같은 – 다다르고, 내밀한 나의 (추하고 멋진) 모습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는 교제의 기간이나 국적과 언어, 나이 혹은 교육의 수준과는 무관해서 대화가 그치고 그 내용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아, 이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 즐겁고 편안하구나!”하고 사후적으로 느낄 뿐이다.
다만 내가 말주변이 없고, 생각과 걸맞는 표현 사이에 시차가 발생하고는 해서 즉시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서신 교환이나 필담에서 이러한 경험을 종종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위인들의 전기에서 그들이 가까운 이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그 인물의 사상과 신념과 감정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매우 타당할 뿐만 아니라 공적인 업적에 가려진 섬세한 진실을 나직하게 드러낼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위인의 삶을 일구어낼 세계의 문은 점점 닫히고 있으니 우리의 이 사적이고 사려 깊고 새삼스런 얘기들은 훗날 나를 느닷없이 미소짓게 만드는 귀한 기록으로 고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