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 한승재 | 어라운드 (2021)
제가 좋아했던 ‘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무소의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인 한승재씨가 쓴 에세이입니다. 그의 속사정이야 제가 미처 다 헤아려볼 순 없지만 진지한 건축물을 내놓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쾌한 시도들은 동경의 마음을 품게 합니다.

2. 행복의 충격 | 김화영 | 문학동네 (2012)
국내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유학 시절, 남부 프랑스에서 겪은 체험과 기억을 엮은 책입니다. 읽다보면 작열하는 지중해 여름의 태양과 해산물, 비릿한 청춘의 냄새를 상상하게 됩니다.

3.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김희정 옮김) | 부키 (2015)
2019년 제게 정말 큰 존재였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우리 삶에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도움을 얻고자 찾아 읽은 책입니다.

4. 음악의 기쁨 1, 2 | 롤랑 마누엘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2014)
문고판으로는 3권이 전집인데 마지막 편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유럽 클래식 음악사를 꼼꼼히 훑으며, 주요 작곡가, 음악가를 캐쥬얼하게 다룬 라디오 방송 대담입니다. 읽는 흐름을 타기까지 이런저런 요소가 갖춰주어야 하지만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음악이 암시하는 바를 몽상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의 움직임과 일치를 이루는 것, 예측할 수 없지만 은밀히 기대했던 전개를 펼치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형식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약동과 안식을 함께하고 모험이 제공할 온갖 놀라움을 기대하고 미리부터 즐기는 거죠. 그 모험이란 결국 소리와 시간의 갈등입니다.”

5.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틀로 로벨리(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2019)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그가 설명하는 시간의 개념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현대 물리학이 철학의 영역과 적지 않게 겹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모든 과학적 진보는, 세상을 읽는 최고의 문법이 영속성이 아닌 변화의 문법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존재의 문법이 아니라 되어감의 문법이다. [……]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6. 소설을 쓰고 싶다면 | 제임스 설터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2018)
친동생에게 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이거 나보고 소설을 써보라는 뜻인가?” 혼자 설레고 혼란스러웠는데 동생은 별 다른 의미 없이 그저 선물하기에 책 가격이 적당했다고 합니다. 2019년 초 출장 간 L.A.의 어느 호텔 객실에서 뜻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읽은 추억이 있습니다. 소설의 기술에 관한 실용적 조언이라기 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삶에서 구할 태도 혹은 관점에 대한 따뜻한 가르침이라고 보는 편이 마땅합니다.

7. 깨끗하고 밝은 곳 |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동욱 옮김) | 민음사 (2016)
헤밍웨이의 작품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만큼이나 매우 ‘유명’해서 정작 원전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잘 안드는 것 같습니다. 이 단편 모음집도 제가 직접 고른 책은 아니고 저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이 준 책인데 생소한 제목의 산뜻한 북커버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헤밍웨이의 직진하는 간결한 문체를 가볍게 맛보기에 충분했습니다.

8. 행인 |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 현암사 (2015)
나쓰메 소세키는 앤트러사이트의 대표 블랜딩 커피 중 하나입니다. 또 20세기 초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현암사에서 나온 그의 전집 중 우리의 마음에 대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룬 이 책을 입문서로 선택했습니다. 화자가 들려주는 친형의 모습이 저를 묘사하는 듯하여 뜨끔하면서도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장남이거든요. 조금 길지만 책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형은 학자였다. 또 식견이 높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시인다운 순수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미남이었다. 하지만 장남인 만큼 어딘가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보통의 장남보다도 훨씬 오냐오냐 키웠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어머니나 형수에게도 기분이 좋을 때는 엄청나게 잘하지만 일단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하면 며칠이고 언짢은 얼굴로 일부러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 앞에 나서면 또 사람이 확 바뀐 것처럼 웬만한 일에도 좀처럼 신사의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는 원만하고 좋은 반려자였 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를 온화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런 평판을 들을 때마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역시 자신들의 자식이라 그런지 어딘가 기뻐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형과 충돌할 때 그런 평판이라도 귀에 들어오면 나는 무턱대고 화가 났다. 일일이 그 사람들 집까지 찾아가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다.”

9. 프래니와 주이 | J.D. 샐린저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2015)
땡스북스 바로 옆 건물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제 직장과 서점 각자 다른 곳으로 이전해 서로 멀리 떨어졌지만, 예전에는 업무 시간 중 머리를 식힐 겸 부담 없이 들려 책을 구경하곤 했는데 그 때 고른 책 중 하나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하나 만으로 전세계 독자들에게 전설로 남은 J.D. 샐린저의 중편 소설로 은둔의 수작입니다.
“무거운 응시였고, 안도감은 그다지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크게 역설적인 의미 없이, 다른 무엇보다도, 사생활을 사랑하는 사람의 응시였다. 자신의 사생활이 일단 침해당하면, 침입자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 셋 그렇게 사라져도, 그것으로 됐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10.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 김) | 문학사상사 (2009)
2016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자전적 에세이가 출간되기 전까지 그의 (비)공식적인 최초이자 최후의 회고록이라는 지위를 누린 책입니다. 저는 하루키의 소설 보다는 에세이와 여행기 등 논픽션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요. 완독을 하고 나면 당장 뭐라도 글을 쓰고 싶어지거나 적어도 달리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서울의 미세 먼지가 심각해지기 전까지 거주하던 경복궁 서촌 일대를 매일 밤 한 바퀴씩 뛰고는 했어요. 지금은 미세 먼지도 위협적이고, 서촌도 떠나왔습니다.

11. 마음의 집 |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창비 (2010)
‘마음’이라는 우리말은 불명확하고 다양한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단어로 어떤 ‘감정’이나 ‘정서’ 상태를 표현할 때도 있고, 누군가의 정신적인 부분과 ‘의지’를 보여줄 수도 있거니와 사람의 ‘지성’과 판단력을 나태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이런 복합적이고 모호한 측면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2011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찌 상 논픽션 대상 수상 소식을 듣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한 책입니다.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고 산만할 때 가끔씩 들춰보는데 마주하게 되는 관조적인 글과 기묘한 삽화 덕분에 제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12. 초상들: 존 버거의 예술가론 | 톰 오버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2019)
마지막은 사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입니다.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일은 굉장히 조심스러우며 친밀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잡아 내가 앞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고, 무서운 성실함으로 매주 한 권씩 한 해에 대략 50권의 속도로 책을 뗀다면, 나는 죽기 전까지 고작 2,500권의 책을 더 읽고 가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고, 주 1권 완독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기에는 세상에 독서와 경쟁하는 재미있는 활동들이 너무 많지요. 이 마당에 읽어 보지도 못한 책을 감히 읽어 보라니요. 하지만 열화당에서 나온 600쪽 넘는 이 책은 일단 서가에 꽂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일종의 고양감을 줍니다. 마치 두툼한 성서처럼요. 평생 현대 문명과 비판적 거리를 둔 마르크스주의자 존 버거의 글은 언제 읽어도 시적인 우아함과 공감하는 지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