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id Resistance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본주의 질서 아래 돌아가다 보니 가족이나 오랜 친구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들과 더욱 철저히 – 대부분의 인간 관계가 거래에 기반하여 맺어진다. 가족은 보통 혈연으로 주어지는 편이고,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면 해를 거듭할 수록 흉금을 터놓을 친구를 새로 만드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시도 자체가 그다지 현명하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여겨진다.  

나는 단골을 고수하는 전략을 취함으로 제나름의 소심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고삐 풀린 소비 욕구에 고분고분 따르는 대신 나는 조금 불편하고, 가성비가 떨어지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나에게 소중한 가치를 무심하게 채워주는 사람들과 내가 가진 자원을 기꺼이 지불해서라도 교류하고 싶다. 또 반대로 내가 그들에게 직업을 지탱할 동기를 부여하는 손님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내 개인적인 자존감의 일부를 차지하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느낀다.

오십줄을 바라보는 스킨헤드 이발사 형이 기력에 부쳐 머리하기를 그만두거나, 볼 때 마다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펑크 스피릿 충만한 (그때그때 다르지만 요새는 갱스타랩을 즐겨 듣는 듯 한데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고의 바리스타 친구가 올드스쿨 타투이스트로 전업을 선언하고, 크루아상과 뺑오쇼콜라를 인상적으로 구워내고, 시나몬롤은 가끔 트레이 단위로 태워먹어 못 팔곤 하는 파티시에 아가씨가 반죽봉을 집어던지는 날이 도래하는 상상을 하면 아주 아찔해진다. 길게는 십 년 넘게 이룩한 내 세계의 한 귀퉁이가 소멸하는 충격일 것이리라. 

내가 완전 올드패션드, 피곤한 영혼이라는 거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라도 살아야 나이드는 맛이 있는 거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